실제 첩보공무원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저자의 작품들은 생생한 첩보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들이다.
그가 다룬 첩보원들의 세계는 그 당시 시대적인 필요에 의해서, 적어도 한 개인이 자신이 맡은 임무에 대한 충성은 주변 관계인들에게도 알릴 수 없는 극비 사항들이 많기에 어쩌면 독자들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이들 세계에 대한 동경(?) 내지는 관심을 지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된 저자의 마지막 작품이자 미처 완간을 하지 못한 상태의 미 출간작을 아들이 뒤를 이어 작품을 완성하고 출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궁금했던 책이다.
여지없이 시대는 달라도 스파이란 세계의 냉정한 현실과 청춘의 힘을 불살랐던 그 시기를 거쳐 노후의 안정된 삶에 안착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첩보국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도 있기 마련.
도시에서의 직장 생활을 접고 한적한 마을에 책방을 연 줄리언 앞에 아버지의 친구라며 접근한 에드워드 에이번은 책방의 지하에 문화 공화국이란 것을 신설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교류 제안을 건넨다.
이후 인연을 이어가는 두 사람은 어느 날 에이번이 줄리언에게 편지를 건네며 한 여인에게 전해줄 편지를 부탁하게 되고 줄리언은 이 부탁에 응한다.
한편 국토안보수장인 스튜어트는 첩보국 내에 어디선가 선이 고장 난 것을 알게 되고 이를 추적하는데...
스파이의 세계란 것이 소리 없는 총성의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인 만큼 조국에 대한 충성은 기본이지만 한 개인으로서 가진 국가에 대한 충성도 이면에 개인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고뇌들이 작품 속에 녹아있다.
에이번이 겪었던 충격과 그 이후의 행보가 첩보국에서 바라봤을 때의 결정들과 함께 아내의 죽음 이후 부부 사이 간에 감춰진 비밀들은 한 인간이란 존재에서 무엇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지, 철저한 자부심을 지닌 그들의 세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사례들이 서로가 알면서도 모른 척, 끝내지고 갈 수밖에 없는 삶의 이중적인 흐름과 배신감, 믿음이 무너지는 관계를 조명한다. (가족일지라도 스파이들의 세계는 ‘서로 공유하는 비밀이 아니라, 서로 감추는 비밀이 더 큰 역할을 한다)
화려하진 않지만 결코 드러내서도 안될 부분이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했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첩보국의 냉정한 판단들은 철저하게 국익 우선 가치에 중점을 둔 정책의 차가움을 느끼게 한다.
작품은 냉전 이후 바뀐 세계정세 속에 작품 속 에이번과 스튜어트의 행보를 통해 외교정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권력에 대한 알력과 견제, 이틈에서 요원으로서 사랑과 정의에 대한 의구심을 노회 한 한 스파이의 삶을 통해 다각적으로 그렸다.
특히 뒤에 아들이 쓴 글이 작품 못지않게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십여 년에 걸쳐 퇴고를 반복하다 완결을 하지 못한 작품의 뒤를 부탁했던 스파이 소설계의 거장인 아버지의 부탁을 이어받아 쓴 작품에 얽힌 내용은 옆에서 가족이자 같은 소설가로서 지켜본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글이라 진심 어린 글로 가득 차 있어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스파이 소설이란 세계를 창조한 존 르 카레의 마지막 유고작인 '실버뷰 '-
박찬욱 영화감독의 추천사처럼 이제는 그의 스파이 소설을 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