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세계에서는 상상력을 키우면서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이지만 현실 같지 않은, 이것이 정말 허구가 아닌 현실이라고!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일들을 직접 겪게 된다면 우리들의 선택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까?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도 무겁고 마지막을 넘기면서까지 이렇게 초조하고 불안하며 분노와 혐오, 고통과 울분이라 단어를 (육두문자까지...) 계속 곱씹으려 읽은 책도 요 근래 들어 드문 경우다.
2023년도 부커상 수장작인 이 작품의 배경이 저자의 고국인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디스토피아를 덧대어 현실의 모습을 허구로 뒤집어 그린 수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요 며칠 국내에서도 복잡한 일들이 발생한 것을 필두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교원 노조 부위원장인 남편 래리가 노조활동을 하면서 행방불명이 되고 이어 아들 마크까지 자신의 뜻을 관철하면서 집을 나간 이후 세 아이만 남은 상황에서 아내이자 엄마인 아이리시는 불안한 상황이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한 모습을 그린 내용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설마 하던 일들이 나의 가정을 깨뜨리고 더욱 복잡한 상황에 몰리면서 조국을 탈출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겪는 사회의 분위기와 혐오와 서로의 목적에 부합하며 적대시하는 두 정권의 복잡한 양상의 피해는 오로지 평범한 국민들이 겪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끝내 돌아올 것이란 희망의 끈을 놓을 수없는 아내로서의 몸부림, 남편과 아들의 부재가 몰고 온 가정의 질서는 지탱하기 어려운 정신적 혼란과 불안을 감싸고돌지만 그렇더라도 평범한 일들마저 무시할 수는 없었던 심정과 행동들이 정말 공감을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체주의로 돌아선 급박한 상황에서 아들을 잃고 가슴엔 피멍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검은 가슴을 안은 채 둥지를 떠나야 만 하는 그들은 무슨 죄가 있었단 말인가?
각 문장과 절마다 끊지 못하는 쉼표와 마침표의 행진들, 그녀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희망과 환상, 이런 모든 것들을 쉼 없이 내뱉고 쓸어 담고 다시 남은 자식들을 위해 가야 하는 엄마로서의 아일리시 모습은 독재정부의 감시와 통제로 이뤄진 것들이 어떻게 폭력과 맞물리면서 비극으로 치닫는지를 냉정한 시선으로 그린다.
읽는 내내 체증이 걸린 것처럼 우리나라 역사의 한 현장을 보는듯한 착각, 지금 이 책을 읽는 순간 저자가 관심 두고 있던 시리아 내전은 끝났지만 예언자가 들려준 이야기는 결코 허투루 지나칠 일이 아님을 우리들을 알고 있다.
- 예언자가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과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이어나지 않은 일의 종말이다, 세상은 어느 곳에서는 늘 끝나고 또 끝나지만 다른 곳에서는 끝나지 않는다, 세상의 종말은 늘 특정적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세상의 종말이 당신 나라에 찾아가고 당신 동네를 방문하고 당신 집의 문을 두드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머나먼 경고, 짤막한 뉴스, 전설이 되어버린 사건들의 메아리일 분이다.- p 355
정말 실제일까를 넘어선 사실들, 그런 사실들이 더 이상 없는 것이 당연한 세상임을 알면서도 세상은 그런 질서를 무너뜨리고 다른 것들을 요구하는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그린 작품으로 평범함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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