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고서 두 주인공의 삶에 대한 생각을 끊을 수 없었다.
창작이란 허구, 사실을 가미한다고 해도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마음이 참으로 착잡했고 그 착잡함을 그린 과정에서 오는 인생의 연륜이 녹록지 않은 것들을 글로 풀어낸 저자의 글발에 한없이 빠져들면서 읽은 작품이다.
영국과 스페인의 피를 반반씩 나눈 토마스와 그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서로의 감정을 확인했던 스페인 여자 베르타-
뛰어난 언어 능력을 지니며 옥스퍼드에서 대학을 다니던 토마스에게 어느 날 닥친 인생의 전환점은 베르타와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삶의 연속이다.
짧거나 긴 출장길, 단순히 직장의 일로만 다닌 줄 알았던 남편이 사실은 고급정보원 스파이란 사실을 위협과 경고에 시달린 끝에 알게 된 베르타의 마음은 이후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성과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교차된 흐름들이 이어진다.
나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고 선택받은 삶, 그런 위험에 빠졌던 한 남자가 사랑하는 아내에게조차 진신을 말할 수없다면 그의 고독과 외로움, 목숨을 내놓고 활동할 수밖에 없는 그의 인생도 안타깝지만 예전의 남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이 서서히 변해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입장인 베르타 또한 부부란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의 속내를 알 수 없는 고요한 수면 밑의 삶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내내 그들의 시선을 쫓아가게 한다.
한 개인의 자유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희생을 강요당해도 되는지, 선택의 거부를 했지만 교묘한 계획에 의해 응할 수밖에 만든 그들의 철저한 방법들, 평범한 한 가족의 평온한 삶이 국가의 개입으로 인해 어떻게 서로가 서로에 대한 진실을 알 수 없는 채 살아가야만 했는지에 대한 여정이 참 안타까웠다.
돌아오기까지 진정된 마음을 가질 수 없었던 베르타와 그녀에게 돌아오면서 비로소 자신의 안식을 찾을 수 있었던 남편.-
책 표지를 보면 담배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조차도 그녀에겐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를, 베르타의 시선으로 그린 두 사람과의 연결고리에 확대되어 이어지는 진행상황들은 남편이자 아이들 아빠이기 전에 한 남자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자신만은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던 그녀가 느낀 생각들은 오만함에 지나지 않았고 그 또한 그녀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스스로 점차 빠져나올 수 없이 이어지는 한계들은 그녀의 독백처럼 다가오는 감정 이입으로 인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큼 나의 모든 것을 말하고 밝히며 힘든 부분들에 관해 어느 정도까지 솔직함이란 이름으로 위안을 받고 싶은가? 적어도 베르타에게 토마스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사랑하기에 더는 위험에 빠뜨릴 수없다는 생각에 의한 행동이었겠지만 기나긴 삶의 대부분을 '기다림'으로 견딘 그녀의 마음을 십 분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는지 묻고 싶다.
특히 저자는 스파이란 직업을 통해 추리스릴러처럼 곳곳의 긴장요소를 심어놓으면서 결혼이란 제도와 부부의 결혼생활을 면면히 관찰하듯 그린 부분들이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두 인물의 심리변화의 흐름들 중간에 들어간 저자의 노련한 문장들이 오히려 많이 와닿았다.
여러 인물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인생의 테두리 안에서 생기는 변화들에 대한 문장들은 철학적이면서도 은유적이다.
책 뒷부분 역자의 말에도 공감된 부분이기도 한데, 베르타의 시선에서 뿜어 나오는 심리변화에 대한 문장들이 대사에서 오는 것보다 오히려 더욱 인생의 관조적인 느낌이 깃든 것들이 많아 필사를 해도 좋을 부분들이 많았다.
토머스가 사라진 그 긴 세월 동안 그녀는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기다리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 내 인생이나 그의 인생, 그리고 사실 수많은 다른 사람들 인생에서와 마찬가지로, 제자리에 서서 기다리고만 있는 인생에선 이런 일은 아주 흔한 일이다. - p 745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결코 그녀를 잊은 적이 없지만 재회했을 때는 그녀의 옆은 낯설기만 하다는 사실, 타인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임을, 두 사람의 인생 안에 담긴 역사와 함께 개인의 상처들을 세심하게 다듬어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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