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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늦여름

 



눈 덮인 겨울 풍경과 “오겐키데스카" 하고 외치는 여인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이와이 슌지 감독-

 

이 작품으로 감독보다는 작가란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게 다가오는데 그의 전공이 미술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읽는다면 훨씬 예술적인 방향에서 재미를 느낄 수가 있을 것 같다.

 

 

미술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에서 다니던 카논은 상사와의  좋지 못한 소문으로 퇴사를 하게 되고 알고 있던 지인의 소개로 미술잡지 편집부 수습사원으로 일하게 된다.

 

 

정규직 사원이 되기 위해서 자신이 취지하고 쓴 내용이 인정받아야 만 하는 규정상 어느 날 '나유타'라고 불리는 일명 복면화가에 대한 취재 명이 떨어진다.

 

 

속칭 사신(死神)’이라 불리며 그가 남긴 그림의 대상자들은 모두 죽었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관심을 갖게 되는데, 첫발부터 취재대상이 모호한 터라 고교 후배 가세와 전 직장동료 하마사키의 도움을 받으며 취재를 시작한다.

 

 

로드무비형태처럼 나유타라 불리는 인물을 추적하는 방식은 그림의 대상이 됐던 이들의 가족이나 친구들, 직장동료, 여기에 차츰 홋카이도, 가와사키를 방문하면서 조금씩 퍼즐이 맞춰가기 시작하면서 예기치 못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예술이 그렇지만 창작에 대한 이해와 이에 몰두하는 이들의 심리상태, 자신의 능력을 뛰어 넘어선 타인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자신이 겪는 좌절들과 이를 다시 함께 한다는 동반 유닛 형태의 과정은 보통 고스트라이터를 생각나게도 하고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림을 통한 전율을 느끼는 부분들은  이 소설에서 오랜만에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부분도 들어 있다.

 

 

 

나유타 존재에 대한 취재를 하면서 하나둘씩 밝혀지는 주인공 카논과 가세, 불가사의한 존재의 예술적 지향과 생과 사에서 스스로 예술적 그림으로 남기고자 했던 존재의 실태는 알듯 말 듯 한  일부 미스터리로 남지만 이 또한  이 작품에서는 충분히 이를 이해할 수 있는 과정들과 결과물로 그려지기에 남다른 미스터리의 한 축을 이룬다.

 

 

 

우연과 결과가 겹치고 겹치면서 돌고 돌아 다시 그림의 모델이 된 카논도 그렇고 다시 제로로 돌아온 가세의 그림에 대한 열정도 늦여름 제2탄으로 만나보길 기대하는 장면도 있었다.

 

 

또한 한 개인의 성장사에 얽힌 비밀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보인 예술이란 무엇인가?, 소메이는 과연 예술에 미친 광인인가? 아니면 끝까지 그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단지 나유타로 대중들에게 남겨지길 원해서 보인 결과물인가?에 관한 궁금증도 여전하다.

 

 

 

여기에 르네상스 시대처럼 마스터의 지휘 아래 제자들과 함께 예술작품을 만들어낸 것에 대한 최종 주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이 현대에 들어서도 비슷한 경우를 다룬 부분은 오로지 예술을 향한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아떨어질 때 대중들의 시선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부분으로 묻는 듯하다.

 

 

 

 

 

 

 

-분명 인생에선 누구에게나 한 번은 이런 일이 찾아온다.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한 점에 집결하여, 나는 이걸 위해 태어났던가, 하고 깨닫는 순간이. 유년 시절 나를 살리기 위해 가차 없이 그어졌던 상처의 자국. 그걸 그에게 드러내며 나는 순수하게 실감했다. 나는 이 사람에게 그려지기 위해 태어났다고. 그래서 이 사람에게, 그림을 가르쳤던 거라고. - p 403

 

 

 

 

 

하이퍼리얼리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물론이고 여러 미술작가들의 작품들을 담아내고 있어 예술적 관심과 추리를 접목한 이색적인 작품이라 영상으로 만나봤다면 책을 통해 새로운 감각의 저자로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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