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눈빛만으로 남자를 죽였다고 말하면, 당신은 나머지 이야기를 듣겠는가? 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듣겠는가? 아니면 나에게서 도망치겠는가? 이 흐릿한 고대의 거울로부터, 이 기이한 육체로부터 도망치겠는가? 나는 당신을 안다. 당신은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너무도 유명한 신화를 현대적인 재해석으로 쓴 작품, 일단 전혀 예상치 못했던 뒤 부분의 반전이 있어 책 출간소식을 듣고 어떤 글로 다가올지 내심 궁금했었다.
전 작품들인 [미니어처리스], [뮤즈], [컨페션]을 통해 여성이 주체가 된 문학을 통해서 다양한 해석과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을 성취해 나가는 글들을 그려온 저자를 생각해 보면 일면 타당한 부분으로 여겨지는 글들이라 그렇지!라는 수긍을 하게 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그동안 우리들이 알고 있던 메두사와 페르세우스의 이야기는 뱀머리를 한 여인을 처단하는 용감한 남성상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이 작품의 화자는 메두사다.
왜 자신이 마녀처럼 나쁜 여자의 상징처럼 보여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듯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테나, 포세이돈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약한 여인이자 아테나로부터 무서운 경고를 받게 된 이후 언니들과 마을을 떠나 외로운 섬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페르세우스가 계획적이든, 우연의 일이었든 간에 섬에 도착해 메두사와 나누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부분들의 소통이 이뤄지는 순간들은 사람들이나 신들에게 내쳐지고 버림받은 듯한 삶을 살아가던 메두사란 여인의 아픔과 배신들, 여기에 한 여성으로서 자신이 꿈꾸던 사랑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고 살아갔던 시간들의 야속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 그녀가 페르세우스에게 느낀 감정은 새로운 희망의 해석처럼 여겨지나, 저자는 신화에서 전해지는 패턴을 전복한다.
이는 저자가 다루는 이런 서사들 속에 내재된 신화 속에서 존재하는 남성이란 존재들(여기엔 신의 존재도 포함)의 위협과 거대한 힘 앞에 인간이 지닌 나약함들, 특히 아름다운 여성이란 이미지라면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억압과 정복에 걸맞은 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주체가 아닌 시류에 휩쓸려 살아가야만 하던 여인상에서 벗어나 독자적이고도 진취적인 진짜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진행은 신화의 전복이 주는 짜릿한 쾌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일러스트레이트 그림과 함께 한 편의 새로운 신화를 읽은 듯한 참신한 책으로 기존의 신화 책과 함께 보면 더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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