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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담아내기 어려운 이야기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

 

태어난 곳은 달라도 유대인이란 이름으로 구분되어 아우슈비츠에서 수용되  극적으로 살아남은 지성인들이자 한 개인의 인생을 통틀어 증언문학의 산증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유대인인 프리모와 독일태생이지만 유대인으로 규정돼 각자의 힘든 삶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았던 그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이미 홀로코스트를 대하는 자세는 여전히 아픔과 불편함이 존재한다.

 

 

그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저항의식으로 참여했거나 시대적 역사에 저항의 몸부림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뜻을 관철했지만 나치스의 고문과 심문들을 묘사한 대목에서는 장 메리가 말했듯 직접적인 경험은 언어로 표현할 수없을 만큼을 강한 충격 그 자체란 말로 대변한다.

 

 

각자가 연합군에 의해 수용소에서 나와 고국으로 돌아간 프레모나 고국을 끝내 등지고 타국에 정착한 장 아메리의 두 갈래의 인생은 그들의 방식으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개인적인 사명 내지는 시간이 흘러 홀로코스트를 대하는 뭇사람들의 인식의 변화 흐름에 대한 경고를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이는 우리나라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통해 일제의 만행을 알리는 행보들이 점차 어느 순간이 되면 이들이 전해주고자 한 목적의 상실 내지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 사실이란 점을 간과하게 될 수도 있다는 염려 부분과 일맥 상통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고통을 겪었다 할지라도 각자가 감내하면서 생각한 그들의 방식은 다른 듯하면서도 우리들에게 울림을 주는 것은 공통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처한 상황에서 보면 프리모보다 장 아메리가 겪었던 일들이 더 힘들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장면들이 내내 아팠고 이는 그들의 작품에서도 글쓰기 방식을 통한 울림이 다르게 다가왔다.

 

 

 

 

한순간에 맞은 고문으로 인해 한 인간이 어떻게 순간적으로 무력해질 수 있으며 구원의 손길조차 희망하기란 사치란 사실들, 그렇기에 기록문화이자 증언문화는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정말 와닿은 부분이었다.

 

 

 

 


자발적 자유 죽음을 택한 장 아메리, 실제 자신의 이름까지 바꿀 정도의 고통을 내내 지니면서 살았던 그의 결단이 이해가 되더라는, 어찌 보면 살아가면서도 내내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한 울분과 통탄이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사상과 교묘한 논리에 의해 바뀌는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려는 이들에게 경고처럼 다가온 장면이기도 했다.

 

 

 

같은 경험을 했어도 삶을 이어가는 행보는 결코 다르지 않았던 그들이 들려주는  자신만의 작품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옳은 자세인지를,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들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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