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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하는 사랑

 


'소수의 고독'에 이은 저자의 새로운 작품-

 

 

이 책의 제목을 접하고 읽으면서 든 생각, 사랑이라는 감정과 그 가치에 대해서 증명을 해야만 하는가? 증명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서 눈에 보이는 어떤 표준화된 절차에 따라 우리는 그것을 증명해야만 사랑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

 

 

 

문장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글이 전 작에서도 느낄 수 있는 과학도의 시선이자 현시대를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들이 실사판처럼 그려 보이는 이 작품 속 내용은 물리학도인  나와 아내 로라, 그리고 에마누엘레란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이야기다.

 

 

이들의 살림과 어린아이를 돌봐주는 여인은 그들 사이에서 바베트란 별칭으로 불리는데, 바베트란 이름은 '바베트의 만찬'이란 작품에서 기인했다.

 

 

화가인 남편을 사랑했고 그가 죽은 이후에도 그리워하는 여인, 젊은 세대들의 부부생활과는 다른 시선의 남편(남자)에 대한 순종적인 아내로서의 모습을 지닌 그녀가 없는 생활이란 사실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상이 어느 날 무너진다.

 

 

그녀의 병으로 인해 그들 부부 사이에 보이지 않던 균열은 점차 갈등으로 번지는데, 작품 전체의 이야기 주된 주인공은 바베트를 중심으로 이들 부부가 어떻게 의지하고 살아갔으며  바베트의 거의 마지막 순간을 접하면서 느끼는 부부의 사랑과 이해, 이후 그녀의 무덤을 찾아가면서 비로소 그녀의 이름이 무엇이었는가를 독자들은 알게 된다.

 

 

 

 

 

 

실상 배경만 이탈리아일 뿐 살아가는 모습들은 어느 부부들 삶과 비슷하게 보인다.

 

 

사랑을 느끼면서 연애를 하던 시절의 감성, 아이가 태어나고 자신의 불안정한 사회적 위치에 대한 불안감과 아내의 직업을 생각하며 새로운 삶에 도전하길 머뭇거리는 과정,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자신과는 다른 면을 보이는 부분에서 오는 느낌들, 여기에 바베트가 오지 않은 상황이 닥치자 성인이 된 그들마저도 고아들처럼 여겨졌다는 내용은 인간들 사이에서의 신뢰의 밑바탕에 대한 사랑에 대한 감정들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려진다.

 

 

 

실질 삶에서 보이진 않았지만 쌓인 감정들이 폭발하면서 부부 사이의 마음이 멀어지는 상황이나 바베트가 그들을 곁에서 보고 느꼈던 정확한 느낌들이 그녀가 떠난 후  그들이 비로소 곁에 있는 소중한 이를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사랑'이란 증명에 대해서 그것을 굳이 증명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 곁에 있었던 한 소중한 존재의 상실이 주는 기회로 인해 작은 것이라도 소중함을 느끼는 과정, 그 속에서 배우자가 무엇을 원했는지를 깨닫는 '나'의 생각이 굳건한 결혼의 과정을 이어가게 한 모습이 아닌가 싶다.

 

 

 

상대를 사랑한다 것은 그 존재에 대한 의미가 내가 느끼는 전부와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것이기에 바베트 부인의 실제 이름 A를 부른 아들 에마누엘레의 목소리가 여전히 들여오는 것 같다.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세운 물리학도인 '나'를 통해 저자가 드리운 문장의 언어는 문학이란 글과의 교감을 통해 전혀 다른 느낌으로 와닿는 순간순간의 글들이 이번에도 많이 와닿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군중 속에 있는 그를 알아보고, 그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그를 고유하게 떼어놓는 것. 아무리 단단한 집단이더라도. 그의 가족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러고는 그가 자신 안에 가두고 있는, 어쩌면 전혀 다른 본성을 지녔을 그의 고유한 무리와 다양체를 찾아가는 것.

 

 

 

 

 

에세이처럼 보이기도 하는 소설이라 잔잔한 감동을 느껴보고 싶다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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