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의 소설은 등장하는 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당 시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인간군들의 면밀한 모습들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 또한 인간 본연의 내면에 간직된 순수한 이성조차도 시대에 갇혀 관습처럼 여기며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과거에만 몰입된 삶을 살아가는 데그리뇽 저택의 주인 데그리뇽을 비롯해 그 주변 귀족들의 생활상들을 저자의 시선을 통해 그리고 있다.
프랑스 역사에서 공화제, 제정, 왕정복고를 거치면서 귀족들 간의 이견 대립, 공화국 시절 사업을 통해 벼락부자가 된 뒤 크루아지예의 복수, 여기에 그의 제물처럼 이용당하는 (스스로 그런 일에 들어섰지만...) 데그리뇽 백작의 아들 빅튀르니앵 백작의 행보는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좇지 못하면서도 순수한 귀족의 자질을 지녔다고 자부하는 그들의 일상들이 서로 견주어 그림으로써 발자크가 기획했던 인간극에서의 또 다른 인물들을 엿볼 수 있다.
아무도 모르게 은행에 은행에 빚을 지는 행보나 이를 놓치지 않고 드디어 복수의 칼을 드러내는 크루아지에나 그저 조카와 자신의 가문이자 귀족이란 신분에 걸맞은 삶에만 치중해 온 고모 아르망드의 행동들은 자각하지 못한 자들의 파멸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읽는 동안 답답한 마음마저 들었다.
등장인물들 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서 전 집사이자 공증인이 된 쉐넬이란 인물은 이 모든 이들과 연결되면서도 세태의 흐름에 주시하는 새로운 인물상처럼 그려진다.
변하는 시대가 요구하는 것에 따른 처세변화와 자신이 모셨던 귀족 데그리뇽 귀족 집안을 도와주려는 행동들, 여기에 귀족 여인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그에게 의지하는 아르망드의 모습들은 프랑스 역사에서 구. 신 시대의 기로에 선 인물로서 보인다.
그가 그 어디에도 기울지 않고 최선의 삶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발자크가 내세운 가장 이상적인 인물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 비교해 본다면 위조어음 사건을 두고 펼쳐지는 판사들의 태도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법 앞에서의 양심마저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으로 비친다.
이렇듯 저자가 그린 이런 풍속세태와 세태를 그린 이 작품을 통해 그는 귀족과 새롭게 부상한 부르주아들의 새로운 신분상승을 기대하는 모습들을 통해 양 계급의 이중적인 모습들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기존의 발자크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따끔한 문장을 통해 귀족 신분, 재산세습, 구체제에 길들여진 충복스러운 마음들을 후련하게 일침 하는 드 모프리뇌즈 공작부인의 말은 이 작품에서 가장 백미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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