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리주인 義理主人]... 정치적 명분을 수립하고 유지하여 왕의 등극에 결정적 공헌을 한 신하를 일컫는 말
조선의 역사를 통틀어 치세가 좀 더 길었더라면 과연 조선의 앞날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왕들 중 한 명이 정조다.
당파 싸움의 한가운데 바람 잘날 없던 목숨을 유지하며 왕에 오르기까지 무수한 두려움의 날들을 극복한 그의 인생은 자신을 둘러싼 주위 사람들을 믿을 수 없던 성장사가 있다.
그런 그가 오로지 한 사람에 대한 충절만은 믿었으니 드라마에서도 자주 오르내린 홍국영이다.
홍국영의 짧고도 굴곡진 조정의 생활은 정작 그가 그토록 비판하던 그 길에 들어섬으로써 스스로 신의를 저버린 결과를 낳았지만 이 작품 속의 배경은 정조가 왕위에 오르는 그 순간까지만 다룬다.
당시 권세를 주무르던 풍산 홍 씨 가문의 일원으로 양반이지만 벼슬엔 뜻을 두지 않았던 아비 덕에 아녀자로서 장사 길에 나선 어머니의 모습은 그도 자라면서 시장의 시류와 조선의 경제상황들을 몸소 체험하면서 느낀 바가 많음을 그린다.
신분의 차별 속에 억울한 소작농들의 삶은 물론이요, 화류계의 기생들의 기구한 사연, 정작 자신마저도 벼슬길에 뜻을 두지 않던 그가 과거를 치르고 조정에 나서면서 정조의 눈에 들기까지 도성 안과 밖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개혁의 바람이다.
조선초 정도전이 주도했던 과감한 개혁을 연상하듯 그가 조선 당쟁과 죽음을 가까이 둔 영조, 정후겸과 홍인한과의 연합으로 이뤄진 조정의 주도권 싸움은 점차 정조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당성을 두고 갈라지면서 그들의 분기점은 넘어설 수 없는 양 갈래로 갈라진다.
역사소설을 읽을 때면 시대가 보는 관점에 따라 그 시대의 흐름들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주인공 홍국영과 정조와의 사이는 정조가 신하들의 세가 우세함에 따른 위태위태한 위험에 몰릴 때마다 비상한 두뇌로 그 순간을 모면하고 그를 보호함으로써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는 충신의 모습을 보인다.
만일 그가 자신이 그토록 비판하던 주류의 권력에 대한 탐욕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정조와 함께 이루는 조선의 앞날은 좀 더 개혁적이고 백성들의 안정된 삶을 주도하는 정치로 이어질 수도 있었단 생각에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왕이 아닌 한 젊은 조선의 청년이 바라본 시각으로 다룬 작품이라 그 시대를 살아가던 민초들의 애환은 물론이고 탐욕에 찌든 벼슬아치들의 공생공락의 비열한 삶들이 서학이란 천주교의 등장과 함께 당시의 흐름들을 잘 포착한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후일 정조가 그에게 내린 처벌은 군사를 대동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행동만 아니면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는 말을 지킨, 그 나름대로의 최선의 실천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천하의 홍국영, 정조를 지키고 왕이란 자리에 오르게 한 주도적인 인물임엔 틀림이 없는 그의 인생 전반부를 깔끔하게 그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