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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람

 

 

김 숨 작가의 작품들은  바닷속의 깊은 심연을  떠오르게 한다.

 

 

들숨 날숨을 들이 내쉬면서 때론 희망적인 숨을 그리지만 그것마저도 허락지 않은 삶의 고달픔, 그 고달픔이란 말 자체 보다도 더 깊숙한 숭고한 기억과 아픔들이 내내 잊히질 않게 한다.

 

 

기존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작가가 그동안 꾸준히 발표한 작품의 연결들, 시대에 휩쓸려 살아가지만 살아간다는 의미마저 느낄 수 없는 아픔들을 지닌 초상들이 이번 작품에도 작가만의 차분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일제의 원폭투하, 이어 해방을 맞은 사람들, 만주, 간도에서 온 이들은 대륙과 바다로 연결된 부산으로, 그곳은  고국을 떠난 자에겐 첫 발을 내딛는 출발지, 기존 땅에 머물던 사람들은 고국을 떠난 가족을 기다리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여러 등장인물들이 서로 마주치고 만나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인연을 가지면서 그들의 인생사연을 들여다보는 내용들은 아픔이란 말 자체도 어울리지 않은 깊은 내면의 상처가 숨어있고 그 상처들은 겉으로 드러내고자 하나 완전하게 보이지 않는 한계들을 드러낸다.

 

 

징용으로 끌려간 일본에서 원폭피해로 몸망가져 돌아온 남편,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나선 딸과의 이별, 집안 살림을 돕고자 방직공장과 조방취직을 하러 떠난 딸들, 굶기는 다반사, 언젠가는 돌아오길 기다리는 아낙네와 아이들...

 

 

 

-“아아, 해옥아!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테니 돌아와야 한다. 백 년, 천 년, 만 년 죽지 않고 기다릴 테니 몸 성히 꼭 돌아와야 한다.” - p 235

 
 

작가의 손길 하나에 담긴 이들의 사연엔 부산이란 도시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과 발자취, 여기엔 우리나라 사람들 외에도 일본인 아내로 한국남자와 결혼했지만 해방과 함께 버려진 여인들, 일본 현지처와 한국 처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 중국인들과 경쟁하면서 노동에 치인 조선사람들의 경쟁들, 자신의 이름이 세 가지로 지어진 여인의 사연은 역사란 이름하에 수면에 드러내 보이지 않은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준 글로 가득하다.

 

 

 

-여자는 도로 눈을 감고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가만가만 속삭이는 듯한 파도 소리에 귀를 귀울이던 여자는 자신의 이름이 세 개나 된다는 걸 문득 깨닫는다. 여자에게 조선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는 그녀를 직업소개소에 팔았다. 일본 이름을 지어준 일본 군인은 그녀의 몸에 그녀가 읽지 못하는 글자를 새겼다. 그리고 지난밤 미국 이름을 지어준 미국 군인은 그녀를 들판에 버렸다.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여자의 입이 벙긋 벌어진다.

‘메리….." - p208

 

 

이렇듯 각자 인생에서 살아간다는 것, 인생에 담긴 인생의 쓰고 아픈  체념의 경지에 이른 이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작품들에서 보인 부분들과는 역사 속 현장을 마주바라야 함을 일깨운다.

 

 

 

가진 것이라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밖에 남은 것이 없는 이들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욱 차분하면서도 그 차분함이 지닌 엄숙함, 내면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파노라마 영상처럼 훑어내린다.

 

 

 

영도와 해운대를 가로지르고 오늘을 살아내야 하기에 이를 악물고 버텨내는 사람들, 현실을 살아가지만 과거 속에 갇혀 있는 분노와 회한들, 그런 모든 감정선의 집단화는 죽어서라도 잊히지 않을 듯한 민초들이 내내 잊을 수가 없었다. 

 

 

검정 몸빼바지, 똬리 위에 생선 담은  양동이를 지고 하루의 양식을 얻는 여인네, 그 모습이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발전의 한 일부였던 시절을 생각하면 시대적 배경은 물론이고 그 시대를 살아가고 연이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역사의 한 시절임을 깨닫게 해 준다.

 

 

 

문학이 지닌 힘이 이렇듯 독자들 가슴속에 내내 지워질 수 없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김숨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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