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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패

 

제9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인 '낭패'-

 

 

보통 생각지도 못한 순간을 당했을 때 '낭패'를 당했다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가  잘 맞는단 생각이 든다.

 

 

어린 나이에 아비의 손에 이끌려 상단 노비로 살아온 재겸이  대행수인 길평에 의해 자신이 모시던 상단 단주를 죽인 범인으로 몰리자 의형제인 사조와 함께 도망친다.

 

 

억울한 자신의 처지를 밝히기 위해 10여 년을 전국에 돌아다니며 길평을 찾아 헤매면서 투전에 발을 들이고 그 안에서 특출한 재능인 사람의 안면에 드러난 인상과 변화의 움직임을 통해 상대방의 의중을 알아채는 것을 통해 허를 찌른다.

 

 

이런 그의 능력을 눈여겨보던 정약용의 추천으로 정조 앞으로 나가게 된 재겸은 정조의 비밀 편지를 전하는 '팽례'로서 벽파의 우두머리인 심지환 대감에게 서신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자신의 아버지였던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 뒤에 우뚝 서있는 시, 벽파 간의 조절을 통한 탕평책을 주도하는 정조의 뜻은 심지환의 충성심이 정말 자신에게  진실된 마음인지를 알고 싶어 하며 이 의중을 이어받은 재겸은 심지환의 얼굴을 통해 판단을 해야만 한다.

 

 

과연 두 사람 사이에서 자신의 목적달성과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정조의 '비밀편지'를 모티브로 한 작품은 당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정조란 인물의 외로움과 각 당파들의 거센 입김 속에 왕이란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한 정치적인 탕평책을 펼치려는 모습이 그려진다.

 

 

믿었던 자에 의해 범인으로 몰린 재겸과 정조의 일생이 신분의 차이를 떠나 한 개인으로서 바라보건대 막막함과 누구를 믿을 것인가에 대한 갈등들은 서로가  낭과 패가 되어 믿지 못한다면 두 사람 모두 낭패 (狼狽)가 되어버리는 설정이 긴장감과 함께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통해 재밌게 그려나간다.

 

 

 

-낭패(狼狽)에 대해 아는가?

`낭`은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 두 개가 짧았지, `패`는 앞다리 두 개가 짧았지. 두 녀석은 혼자서는 굶어 죽기 딱 좋았어. 그래서 둘은 서로에게 의지해서 사냥을 하고 밖을 돌아다니기로 하였네. 하지만 두 녀석이 함께 걸으려면 어지간히 사이가 좋지 않고서는 넘어지기 일쑤였지.
 
 
 
정조와 심지환, 그 두 사람 사이에서 누구를 믿어야 할 지에 대한 재겸의 고민과 맞물린 또 다른 사건에 휘말리면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나가는 진행도 흥미롭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믿음과 배신이란 두 개의 방향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 상대와 나 모두에게 좋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인간관계를 생각해보게 한다.
 
 
 
한번, 두 번, 재차 심사숙고했더라면 당시의 정세 판도가 달리 변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재겸이나 정조 와의 관계를 통해 돌아본 역사 소설 속 인간들의 믿음을 그려나간 작품은 오늘날에도 비슷한 상황들이 있음을 느껴보게 한다.
 
 
 
끝없이 권력의 폭풍 속에 후대를 걱정하던 정조의 면모나 그런 정조의 뜻을 이어받은 재겸이나 시절의 거센 역풍들이 이들의 인생을 편안하게 이어주지 못함이 안타깝다는 생각과 함께 역사 소설의 다른 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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