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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모든 것을

 

 


1991년 12월 11일, 학원에서 귀가하던 다치바나 아쓰유키가 유괴된 후 곧 지역 인접한 지역에서 건강식품 회사 '가이요 식품'의 기지마 시게루의 손자 나이토 료가 유괴되는, 동시다발유괴사건이 발생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쓰유키는 곧 발견되지만 료를 유괴해 간 범인은 돈을 요구하며 접선 장소를 말하는데 경찰동조 수사과정에서 범인을 놓치는 일이 벌어진다.

 

 

이후 이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겨진 채 3년이 흐른 후 7살이 된 손자 료가 홀연히 나타난다.

 

 

경찰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범인을 잡기 위해 기지마 및 료의 답변을 기대했지만 도움을 얻을 수 없는 채 경찰계에선 아픈 사건으로 남는다.

 

 

이후  30년이 흐른 후 당시 취재기자였던 몬덴은 가깝게 지냈던 당시 형사였던 나카지마의 부고를 계기로 그가 은퇴 후에도 여전히 사건의 취재를 해왔었던 사실과 료가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 형사 동료의 부탁으로 취재를 하게 된다.

 

 

작품의 주요 흐름은 추리 소설에서  범인은 누구인가에 집중한 것이 아닌 공백 3년 간의 료의 삶과 그를 거둔 자들은 누구인지, 그가 남다른 그림의 소질로 어떻게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가를 통해 사건의 진실 내막을 걷는 여정을 그린다.

 

 

 

 

 

 

한 편의 르포타주 작품을 연상시키 듯 하나하나 단서나 무작위로 지역을 탐방하고 관련자를 만나는 과정이 료의 3년간 시절과 집으로 돌아온 후의 성장기, 여기에 일본 미술 화단계의 돈과 예술회원자격, 스승에게 반기를 든 자가 미술 화단에서 어떤 길을 걷게 되는가에 이르기까지 한 개인사에 얽힌 여러 사람들의 운명이 하나의 원으로 서로 연결되면서 밝혀지는 진실은 많은 묵직함을 던진다.

 

 

 

사회파 미스터리에서 본듯한 양육자의 나태와 사지에 내몰린 아이의 심경변화, 여기에 실력은 있으나 사실주의 화가로서 현대에서 요구하는 미술의 성향에 점차 멀어지는 세태에 '사실'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바라보고 대하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추리형식을 통해 저자는 사회적인 시선에서 비 관심자로 몰린 자들의 생의 이면을 미술이란 것을 통해 내비친다.

 



여기에 기자로서 보고 들은 것을 '사실'로 본 기준으로 삼아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저널리즘에 대한 자세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으며  이 사건을 통해 미술을 사랑하고 지원하는 자들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진행과정은 드라마틱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마음 깊은 곳에서 다카히코와 료의 '실재'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다'라는 묵직함, 그리고 '살아왔다'라는 대단함. - p 542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강하고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료가 보고 배운 사물을 대하는 자세는 제목이 상징하듯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동경이자 유괴라는 범법자체에 대한 단죄보다는 공백시간을 통해 인간사에 드리운 많은 것들을 그려낸 작품이라 후반부로 갈수록 전해주는 먹먹함을  잊을 수가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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