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업 J프로토콜에 다니는 나카이 유이치는 고교 동창생인 반과 함께 방콕에서 교통 IC카드 판매 계약을 성사시키고 귀국하던 중 마카오로 바꿔 투숙하면서 카지노에 들른다.
도박엔 관심이 없지만 한 노파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그를 따라 베팅한 결과 거금을 손에 쥐고 이어 성매매를 하는 여인으로부터 '당신은 왕으로서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이어 연인관계인 직장동료 유키코로부터 홍콩 자회사 대표이사로 발령받을 것이란 소식을 미리 듣게 되고 이는 곧 현실화된다.
겉으로 보기엔 승진처럼 보이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페이퍼 컴퍼니로서 모회사의 자금을 관리하는, 계약을 성사시킨 후에 이용가치가 떨어진 자신과 반을 버리고자 실행한 것을 알게 된다.
단지 이뿐만이 아니라 고교 첫사랑인 나베시마와 얽힌 사연은 그가 원치는 않았지만 맥베스처럼 왕으로 군림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주변의 믿었던 사람들마저 죽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택할까?
작품 속 내용은 하나의 주제가 아닌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경제적인 스릴처럼 샐러리 맨으로서의 애환들, 해외영업사원으로서 다른 나라들을 방문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의 여행 일정과 성취감은 물론 냉철한 비즈니스 함정에 빠짐으로써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맥베스의 운명처럼 될지, 현대의 다른 맥베스가 될지를 궁금하게 만든다.
또한 첫사랑이었던 나베시마와의 인연이 20여 년이 흘러서 다시 사건으로 만나게 됐을 때 과거의 기억과 현재 그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판단, 그리고 현 연인관계인 유키코에 관한 생각들은 조선의 카이저라(읽다 보면 누군지 짐작할 수 있는 인물)는 인물의 만남과 더불어 살기 위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범죄소설의 성격을 보인다.
특히 해외출장이 잦은 주인공이 사건에 휘말려 베트남, 방콕, 마카오, 홍콩, 일본을 방문하는 과정은 2000년대 각 나라의 풍물과 정취, 음식들, 나카이가 즐겨 마시는 콜라와 럼으로 만든 쿠바리브레와 함께 독자들 나름대로 방문한 나라가 있다면 절로 그 소설 속에 빠져들며 읽게 된다.
IC카드와 이에 얽힌 암호해독을 둘러싼 기술을 차지하기 위한 이권싸움이란 점에서 경제 소설이고, 그런 가운데 하드보일드 느낌이 물씬 풍기는 피가 난무하는 범죄소설이면서도 첫사랑에 대한 쓸쓸한 기억과 추억들이 이뤄질 수 없다는 애절함이 들어있는 로맨스물로 조화롭게 구성된 작품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고전 속에 맥베스는 왕이 되고서도 자신 스스로가 파멸해 가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미 맥베스의 운명에 대한 결과를 알고 있는 나카이는 그 자신 또한 왕이 되었고 같은 맥베스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결단과 나베시마의 정체를 알아가는 반전은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큐브 맞추기 속 숫자처럼 적절한 타이밍에 절묘한 맛을 느끼게 하는 작품으로 두 여성이 만나는 장면은 왜 이리 아련한지...
22년 만에 출간한 두 번째 장편 소설이라는데 촘촘히 엮인 내용이 좋았던 소설, 하드보일드 취향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