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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동명영화 제목 '어톤먼트'의 원작소설로 잘 알려진 작품으로 이번에 개정판으로 새롭게 만났다.

 

 

영화에서의 두 주인공이 가슴 아픈 사연의 영상미가 작품을 읽으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새록새록 거듭 기억나는 것은 아마도 잊지 못할 아픈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두 사람 사이의 감정 이상이 아닌 전적으로 타인에 의한 이별이었기에 더욱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부분들이 있어도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과 가해자가 느끼는 감정엔 다층적인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기에 자기 정당화로 오류를 잡고 넘어가려는 일말의 잘못은 당사자의 용서가 필요함을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의 위안마저 갖게 한다.

 

 

몽상가이자  소설가를 꿈궜던 브라이어니가 적어도 자신의 잘못을 알았던 그 시점에 오류를 바로 잡았더라면 로비와 세실리아는  행복한 연인으로서의 출발을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나이가 어리고 철이 덜 들었다는 순수한 감정의 소녀, 자신이 본 것에 대한 상상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그 일들이 사촌 롤라의 사건으로 인해 더욱 확고한 심증으로 굳어지고 로비를 범인으로 몰아간 사건의 흐름들은 1부에서 각 등장인물들의 등장과 심리변화, 주변 풍경과 함께 흐른다.

 

 

이어 로비가 성폭행범으로 끌려가고 제2차 전쟁 중 군인으로 차출돼 본격적인 전쟁의 참상 속에서 견디는 과정은 전쟁사에 대한 저자의 묘사력도 실제처럼 느껴지지만 그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했던 의지력은 세실리아를 향한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로비는 어둠 속에서 그 마지막 두 문장을 소리 없이 되뇌어보았다.

내 삶의 이유. 생활의 이유가 아니라 삶의 이유. 바로 그거였다. 그녀는 그의 삶의 이유였고, 그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였다.

 

 

- 돌아와-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 결코 브라이어니를 용서할 수 없었던 로비와 세실리아의 심정이 너무도 공감되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지독한 '사랑'이란 감정,  정확히는 두 사람이  마음을 확인하고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희망이 무고죄와 전쟁이 모두 앗아가 버렸기 때문에 읽는 내내  둘의 사랑이 안타까움이란 마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사건의 후폭풍은 가족과 단절하고 간호사의 길을 걷던 세실리아의 뒤를 이어 자신의 죄를 속죄하고 싶은 행동으로 같은 길을 걷는 브라이어니의 행동으로 진행되며 이는 사실 그녀 스스로의 위안처럼 여겨진다.

 

 

두 사람의 용서를 구한다는 것, 두 사람의 인생 자체를 돌이킬 수 없는 강 너머로 만들어버린 죄책감에 대한 모색은 전쟁이 치닫는 시대의 부응과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덜고자 하는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이지만 그녀 외에도 가해자이자이면서 응당 벌을 받아야 마땅한 롤라와 마셜이란 두 사람의 인생이 순탄하게 흘러갔다는 것은 인생은 선과 악의 분명한 선 자체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간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도 그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인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에 대한 몰이해가  불행을 불렀다. 그리고 오직 소설 속에서만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모두가  마음이 똑같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것이 소설에 필요한  유일한 교훈이었다.-p.67

 

 

 

 

 

브라이어니 자신은 속죄의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며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행동을 하려고 결심하지만 마지막 반전은  큰 충격 그 자체로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노년의 작가가 된 그녀가 77번째 생일을 맞아 유년시절 살았던, 지금은 호텔로 변해버린 옛 저택에서 그 당시 무산되었던 자신이 쓴 희곡[아라벨라의 시련]을 공연하는 것을 보는 장면은 인생의 끝을 향하는 모든 이들의 인생 자체를 넘나들며 회한과 회상, 과거 속의 두 연인에 대한 이야기가 그녀의 고백을 통해 속죄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특히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라는  문장은 저자 자신의  철학적인 생각이 아닌가 싶다.

 

 

 

브라이어니는 '그들이 나를 용서하게 할 만큼 이기적이지 않다'란 말로 맺음으로 끝을 내지만 이미 저질러진 행동과 타인에게 가한 상처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무뎌지지만 없어지지는 않았다는 점,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보인 속죄라는 의미가  지닌 묵직함이 쉽게 지워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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